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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한국이... 시리즈215

만약에 조선이 임진왜란 당시 3만 정예군을 갖추고 있었다면1편: 전쟁의 서막, 그러나 달라진 첫 판 만약에 조선이 임진왜란 당시 3만 정예군을 갖추고 있었다면 1편: 전쟁의 서막, 그러나 달라진 첫 판 1592년 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시대를 통일하며 일본의 잉여 전투력을 조선으로 향하게 했다. 실제 역사에서 조선은 준비가 허술했고, 신립 장군이 이끈 8천 경군은 탄금대에서 전멸하면서 길이 열려버렸다. 하지만 만약 이때, 조선이 3만 명의 정예군을 미리 양성해 두었다면 어땠을까?초반 판도, 완전히 달라지다실제 선조는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흘려듣고, 제대로 된 대비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IF의 조선은 이이의 제안 중 절반이라도 실현해 3만 명의 기동력 있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신립이 끌고 간 건 고작 8천이 아니라 3만의 정예군. 그들이 문경 새재에 진을 치고 있었더라면? 일본군의 북상은 초반부.. 2025. 8. 18.
🇰🇷 광복절의 숨겨진 이야기 - 📌 3편 – 광복 직후의 혼돈 & 우리가 몰랐던 포인트 🇰🇷 광복절의 숨겨진 이야기 📌 3편 – 광복 직후의 혼돈 & 우리가 몰랐던 포인트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항복과 함께 찾아온 해방의 날.하지만 조국 땅 위에 내리쬔 햇빛은, 곧 길게 드리운 그림자를 만들었습니다.🪖 미군정·소련군의 38선 점령연합국의 합의에 따라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북쪽은 소련군, 남쪽은 미군이 각각 점령합니다.이는 ‘잠정 조치’라 했지만, 이후 냉전의 전초선이 되어분단의 고착화를 불러오는 첫걸음이었습니다.🏛 임시정부 귀국 문제와 정치 세력 경쟁상하이·충칭에서 수십 년간 독립운동을 이어온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당연히 우리가 합법 정부”라 주장했지만,미군정은 이를 공식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국내에서는 친일 관료 잔존 세력, 신흥 정치인,좌익·우익 세력이 얽.. 2025. 8. 18.
🇰🇷 광복절의 숨겨진 이야기 - 📌 2편 – 첩보전 & 국제정세의 결정타 🇰🇷 광복절의 숨겨진 이야기 - 📌 2편 – 첩보전 & 국제정세의 결정타 광복의 문은 결코 하루아침에 열린 것이 아니었다.그 뒤에는 총탄보다 빠르고, 포탄보다 치명적인 첩보전이 있었다.1. 북방의 그림자 – 소련 라인과 관동군의 불안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활동하던 조선인 독립군들은 소련의 비밀 연락망과 맞물려 있었다.이들은 관동군의 후방을 교란하고, 군수 물자 수송로를 끊어 일본군의 전선 유지 능력을 약화시켰다.특히 하얼빈-블라디보스토크 구간에서 벌어진 철도 폭파 작전은 일본군의 병참에 치명타를 주었다.그 결과, 관동군은 전선이 무너지기도 전에 스스로 붕괴 직전의 상태에 몰렸다.2. 1945년 8월 – 하늘에서 떨어진 두 번의 ‘태양’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두 번의 원자폭탄 투하는.. 2025. 8. 18.
🇰🇷 광복절의 숨겨진 이야기 ① – 서막과 독립운동 자금전 🇰🇷 광복절의 숨겨진 이야기 ① – 서막과 독립운동 자금전1945년 여름, 한반도는 여전히 일본 제국의 군홧발 아래 있었다. 그러나 전 세계 전선에서는 이미 판세가 기울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이 섬을 하나씩 점령하며 일본 본토를 향해 다가가고, 유럽에서는 독일이 무너졌다. 하지만 조선 땅의 대부분 사람들은 그 ‘종말의 시계’가 이렇게 빨리 12시를 칠 줄 몰랐다.💰 해외에서 모인 독립자금의 비밀임시정부와 광복군이 살아남고 움직일 수 있었던 건, 곳곳에서 흘러온 자금 덕분이었다.재미 교포 사회: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교포들이 주급의 일부를 ‘국민회’를 통해 모아 송금.중국 교민 사회: 상하이·충칭에 있던 상인들은 무역 이익 일부를 비밀리에 독립운동 자금으로 전달.화교 상인 네트워크.. 2025. 8. 18.
만약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3편: 식민 경쟁의 방향 전환 – 세계 질서의 다른 출발점 만약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3편: 식민 경쟁의 방향 전환 – 세계 질서의 다른 출발점 아메리카가 여전히 미지의 땅으로 남아있는 16세기, 유럽의 식민 경쟁 구도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대서양 너머의 황금과 은을 찾지 못한 채, 시선을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돌린다. 인도양과 홍해, 동아프리카 연안은 ‘황금 해안’이 아니라 ‘혈전 해안’이 된다. 향신료, 보석, 비단, 상아를 놓고 벌이는 쟁탈전이 몇십 년 일찍 시작된 것이다. 네이티브 아메리카 문명은 이 덕에(?) 최소 50년 이상 더 숨을 쉰다. 아즈텍과 잉카 제국은 스페인 깃발을 단 기병이 아니라, 여전히 이웃 부족과의 전쟁, 역병, 내부 정치 문제에 집중한다. 유럽인의 직접적인 군사 침공이 늦춰지.. 2025. 8. 14.
만약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 2편: 산업 육성, 그러나 한계 만약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2편 – 산업 육성, 그러나 한계 아메리카에서 금과 은을 쓸어담던 이야기는 이 세계 스페인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왕실 재정은 늘 빠듯했고, 재정청은 돈이 아니라 ‘인력과 시간’이라는 자원으로 국가를 굴려야 했다.그래서 스페인은 처음부터 자국 경제의 심장을 농업과 산업에 두었다.농업 부문에서는 곡물 수확량을 높이기 위해 대대적인 관개사업을 벌였다. 건조한 메세타 고원에도 물길을 트고, 작물 다양화를 장려했다. 밀·보리뿐 아니라, 포도와 올리브 재배를 늘려 수출 품목도 확대했다. 농민들은 “왕이 우리에게 씨앗을 주는 날이, 예전 왕들이 금화 던져주던 날보다 기쁘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다. 산업 부문에서는 철제 무기, 선박, 직물 산업이 성장의 축이 됐.. 2025. 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