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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한국이... 시리즈

🇰🇷 광복절의 숨겨진 이야기 ① – 서막과 독립운동 자금전

by 지구굴림자 2025. 8. 18.

🇰🇷 광복절의 숨겨진 이야기 ① – 서막과 독립운동 자금전

1945년 여름, 한반도는 여전히 일본 제국의 군홧발 아래 있었다. 그러나 전 세계 전선에서는 이미 판세가 기울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이 섬을 하나씩 점령하며 일본 본토를 향해 다가가고, 유럽에서는 독일이 무너졌다. 하지만 조선 땅의 대부분 사람들은 그 ‘종말의 시계’가 이렇게 빨리 12시를 칠 줄 몰랐다.


💰 해외에서 모인 독립자금의 비밀

임시정부와 광복군이 살아남고 움직일 수 있었던 건, 곳곳에서 흘러온 자금 덕분이었다.

  • 재미 교포 사회: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교포들이 주급의 일부를 ‘국민회’를 통해 모아 송금.
  • 중국 교민 사회: 상하이·충칭에 있던 상인들은 무역 이익 일부를 비밀리에 독립운동 자금으로 전달.
  • 화교 상인 네트워크: 일본의 감시를 피하려면 외국인 명의의 거래가 유리했기에, 화교 상인들이 자금 운반책 역할을 했다.

🕵️‍♂️ OSS와의 접촉

미국 전략사무국(OSS)은 이미 1944년부터 광복군과 접촉했다. 대일 첩보전, 일본군 통신망 교란, 포로 구출 등 다양한 훈련이 진행됐다.
당시 OSS 장교들이 광복군 대원들에게 “너희의 조국을 되찾는 일”이라고 강조했을 때, 많은 대원들이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 자금은 어떻게 쓰였나?

  1. 무기와 장비 구입 – 주로 중국 국민당 정부를 통해 구입
  2. 대원 훈련비 – 총·수류탄 훈련, 통신·암호 교육, 무전기 도입
  3. 정보원 네트워크 유지 – 일본군 동향, 항구·철도 정보 수집

🌅 해방을 향한 서막

그해 여름, ‘광복’이라는 단어가 사람들 입에서 진짜로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독립운동 세력들은 아직 조심스러웠다. 자금은 넉넉지 않았고, 전황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당시의 비공식 기록에는 이런 유머도 남아 있다.

“우리가 모은 돈이 일본군 술값보다 적지만, 정신력은 그들의 술기운보다 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