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구병크 연대기 – 아이티 (2편)
자유의 저주 (1804~1915)
“혁명으로 나라를 세웠지만, 빚으로 나라를 팔았다.”
💔 1804년, 아이티는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그 자유를 반긴 나라는 단 하나도 없었다.
유럽 열강들은 “노예가 주인이 된 나라”를 전염병처럼 취급했다.
아이티의 독립은 인류사적 사건이었지만,
동시에 ‘노예제 사회’들에게는 최악의 악몽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침묵으로 복수했다.
무역을 끊고, 외교를 막고, 아이티를 세계의 바깥으로 밀어냈다.
자유의 대가는 곧 고립이었다. 🌒
💰 그리고 1825년, 프랑스가 칼을 빼들었다.
“너희의 독립을 인정하겠다.
하지만 우리 식민지 소유주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
그 금액은 당시 아이티 GDP의 5배, 약 1억 5천만 프랑.
한마디로, 자유의 가격표였다.
프랑스 해군 함대가 포르토프랭스 앞바다에 정박했을 때,
아이티는 선택권이 없었다.
“자유를 잃든가, 빚을 지든가.”
그들은 자유를 택했다 — 그리고 그 순간부터 노예의 사슬이 빚의 사슬로 바뀌었다.
📉 이 배상금은 150년 동안 아이티의 경제를 질식시켰다.
정부는 배상금을 내기 위해 프랑스 은행에서 돈을 빌렸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또 다른 나라에서 빚을 졌다.
그야말로 ‘이자 위에 이자’의 지옥 순환.
그 결과, 도로·학교·산업 같은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세금과 채무’가 국가의 중심이 되었다.
아이티의 경제는 태어나자마자 노쇠했다.
⚔️ 정치도 예외가 아니었다.
독립의 영웅 데살린은 암살당했고,
이후 수십 년간 군벌과 독재가 권력을 차지했다.
정권은 총으로 교체되었고, 헌법은 매 정변마다 새로 써졌다.
“아이티는 자유를 얻었지만,
그 자유를 관리할 제도를 얻지는 못했다.”
그들의 혁명은 이제 내전의 습관이 되었다.
🩸 19세기 후반의 아이티는
한때 “흑인들의 희망”이던 나라에서
“아무도 손대지 않는 땅”으로 변했다.
부와 영광의 약속은 사라지고,
남은 건 피폐한 땅, 고리대금, 그리고 끝나지 않는 국채뿐이었다.
📜 엔딩 포인트
“혁명으로 나라를 세웠지만, 빚으로 나라를 팔았다.”
“자유의 값표엔 아직 0이 찍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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