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국제정치 개그 시리즈

귀족 문화의 화려함과 백성의 피눈물 ① - 베르사유의 빛, 파리의 눈물 – 프랑스 절대왕정의 사치

by 지구굴림자 2025. 8. 11.

지구병크 연대기 67편 - 귀족 문화의 화려함과 백성의 피눈물 ①

베르사유의 빛, 파리의 눈물 – 프랑스 절대왕정의 사치

17세기 프랑스.
“국가란 곧 나다(L’État, c’est moi)”라고 외친 루이 14세
진짜로 자기 자신을 태양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태양을 받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베르사유 궁전.

여기는 그냥 ‘왕이 사는 집’이 아니었다.
귀족 수천 명이 매일 들락거리는 거대한 무대,
패션·음악·연회·연극이 끝없이 펼쳐지는 종합 문화센터였다.


귀족의 하루

17~18세기 프랑스 귀족들은 그야말로 **“사치와 낭비의 살아있는 교과서”**였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리는 무도회와 연회는 매번 수천 명이 모였고,
귀족들은 하루 종일 파우더를 얼굴에 바르고, 가발을 쓰고, 향수를 뿌리며 살았다.
심지어 향수를 뿌린 이유는 ‘향기로운 멋’ 때문이 아니라, 목욕을 안 해서 냄새를 가리기 위해서였다.

이런 문화는 단순한 ‘허세’가 아니었다.
궁정에서 쓰이는 의복, 보석, 가구, 악기, 음식까지 모두 전문 장인과 예술가들의 기술이 필요했다.
결국 귀족 문화가 프랑스를 유럽 최고의 패션·예술 중심지로 만들었고,
오늘날 샤넬, 루이비통 같은 명품 산업의 뿌리도 여기서 나왔다.

문제는 이 화려함이 국가 경제를 빨아먹는 블랙홀이었다는 거다.
귀족들은 세금 한 푼 안 내고, 온갖 특권을 누리며
국가 재정을 마치 자기 금고처럼 썼다.
재정은 바닥나고,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평민에게 세금을 더 걷었으니
결국 평민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세금 폭탄과 백성의 삶
당시 프랑스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던 농민·서민들은
삼중세, 부역, 십일조로 등골이 휘었다.
흉년이 들면 빵 한 덩이 값이 임금의 절반을 넘었고,
아이들은 영양실조로 죽어나갔다.

귀족은 전쟁에도 잘 안 나갔고, 대신 농민들이 세금+징집을 당했다.
즉, 화려한 가발과 황금 찻잔 뒤에는
굶어 죽는 백성들의 피눈물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찾아온 폭발
루이 14세 이후에도 사치는 줄지 않았다.
루이 15세, 루이 16세 시절에도 궁정 잔치는 매일같이 열렸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 했다는
(실제로는 안 했지만) 전설 같은 발언이 이 시기의 상징이다.

결국 1789년,
굶주린 파리 시민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부수고 혁명을 시작했다.
베르사유의 샹들리에 불빛은 꺼졌고,
귀족 문화는 단두대와 함께 몰락했다.


정리하자면, 프랑스 귀족 문화의 교훈은 이거다:

“국가가 파티를 오래하면, 언젠간 그 음악 값은 백성이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