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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한국이... 시리즈

🇰🇷《만약에 한국이 식민지가 된 적 없는 나라였다면?》 1편 – 병인양요는 없었다: 프랑스와 손잡은 흥선대원군의 실리외교

by 지구굴림자 2025. 7. 21.

🇰🇷《만약에 한국이 식민지가 된 적 없는 나라였다면?》

1편 – 병인양요는 없었다: 프랑스와 손잡은 흥선대원군의 실리외교


1860년대, 조선의 운명을 바꿔놓은 선택 한 가지.
만약 흥선대원군이 프랑스와의 접촉을 끊지 않고, 병인양요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실제로 당시 프랑스는 조선에 지속적인 선교 및 통상적 접근을 시도했고, 흥선대원군 역시 완전히 문을 닫기보다는 외세의 흐름을 탐색 중이었다. 단지 문제가 되었던 건 조선 내에서 천주교 박해로 이어졌던 '병인박해'였고, 그것이 결국 프랑스를 자극해 병인양요로 번진 것.


가정: 병인박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흥선대원군은 천주교 박해를 정치적으로 유보하고, 프랑스 측과 실무 접촉을 이어간다.
조건은 단 하나: 선교는 제한적으로 허용하되, 무역과 기술 도입은 본격화한다.


🛠️ 조선의 선택: 실리적 개화

  • 1866년, 조선은 프랑스와의 비공식 통상 협정 체결.
    → 프랑스는 조선 서해안 일부 항구에 한해 선박 기항 및 상관 설치
    → 조선은 대가로 군사 기술 및 교재형 무기 도입 허용
    → 선교는 수도 한정, 지방 파견은 불허. 하지만 신자 박해는 중단

🚢 프랑스식 개화의 장점

  • 군사 개혁: 프랑스식 보병 훈련 도입, 흥선대원군 휘하 별기군보다 앞선 군대 창설
  • 기술 수입: 광산 채굴, 조선 기술, 농업 개량 기술 등 유럽 기술 유입 시작
  • 문화 교류: 조선 최초의 프랑스어 학교, 통역관 양성 프로그램 시범 운영
  • 정보 네트워크 형성: 조선 사절단이 프랑스 파견, 파리 박람회 준비

🧠 흥선대원군의 외교 전략: 조선판 '실리외교'

“나는 문을 닫은 적이 없다.
다만 누구를 향해 열 것인지, 조선이 선택할 권리를 지킬 뿐이다.”
— 흥선대원군, 가상의 외교담화 중

이 시나리오 속 흥선대원군은 단순한 쇄국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청국의 간섭’, ‘일본의 야심’ 사이에서 조선의 실리 외교 전략을 강화한다.

프랑스와의 동맹은 조선에게 외교 무대의 첫 디딤돌이 되었고,
병인양요 같은 무력 충돌 없이 조선은 자발적 개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 다음 편 예고

2편 – 청·일 전쟁에도 끄떡없는 이유: 조선판 삼원외교의 탄생

청국도, 일본도, 러시아도… 모두 조선을 탐내지만
조선은 프랑스와 손잡고 ‘균형 외교’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