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격자의 입장에서 본 한반도: 이 땅은 왜 이렇게 무서운가」 1편 — 관악산에서 시작된 의문 :“이걸 들고 어떻게 올라오라는 거지?”
오늘 관악산을 올랐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산이라 만만하게 봤는데, 몇 걸음 지나자 생각이 바뀌었다. 흙길이 아니라 미끄러운 화강암, 완만해 보이는데 계속 이어지는 끝없는 경사, 잠깐 평평해졌다 싶으면 다시 시작되는 체력 소모 구간. 등산객도 숨이 차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무기와 군장 메고 올라오라고?”
그 순간 관악산은 더 이상 운동 코스가 아니라, 하나의 방어 시설처럼 느껴졌다.
한반도의 산들은 대체로 높지 않다. 백두대간도 히말라야나 알프스에 비하면 숫자만 보면 얌전한 편이다. 하지만 직접 걸어보면 알게 된다. 이 산들은 친절하지 않다. 흙이 많아 발이 파묻히는 산도 아니고, 푹신한 낙엽이 쿠션이 돼주는 산도 아니다. 단단한 화강암 위에 몸을 맡기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버티며 올라야 하는 산이다.
공격자의 시점으로 바꾸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기를 들고, 방패를 들고, 혹은 현대식 장비와 보급을 짊어진 채 이 경사를 오른다고 가정해보자. 아직 적을 만나지도 않았는데 이미 호흡은 흐트러지고, 대형은 깨지고, 체력은 반 이상 소모된다. 전투는 시작도 안 했는데, 전투력은 이미 깎여나간다.
한반도의 산이 무서운 이유는 높아서가 아니라, 끈질겨서다.
한 번만 넘으면 평야가 펼쳐지는 구조가 아니다. 하나를 넘으면 또 하나가 나오고, 그 다음에도 또 산이다. 공격자는 계속해서 “이쯤이면 끝이겠지”를 기대하지만, 기대는 번번이 배신당한다. 진격 속도는 느려지고, 보급선은 늘어지고, 판단은 조급해진다.
반대로 방어자에게 산은 훌륭한 동맹이다.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고, 이동 경로를 예측할 수 있고, 좁은 길목에서 적을 묶어둘 수 있다. 산은 단순한 지형이 아니라 전투의 규칙을 바꾸는 장치다.
관악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이런 생각이 더 또렷해졌다.
이 땅에서 수천 년 동안 외세를 막아낸 힘은 사람의 의지만이 아니었다. 사람 이전에, 지형이 먼저 싸워줬다. 조상들이 산에 성을 쌓고, 평지에서 결전을 피했던 이유가 갑자기 이해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의문을 더 깊게 파고들 예정이다.
한반도의 산들이 왜 공격자를 갉아먹는 구조인지, 그리고 왜 이 땅이 늘 “쉽게 먹히지 않는 땅”으로 기억됐는지를 말이다.
마지막으로 오늘 관악산이 가르쳐준 한 줄 교훈.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적을 만나기 전에 먼저 산과 싸우는 전쟁이다.
— 2편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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