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만약에 미국이 6·25 전쟁에서 핵을 사용했다면? - 🟠 1편: 맥아더의 마지막 카드 – 핵
1950년 11월,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어 30만 병력을 쏟아붓자 유엔군은 순식간에 밀려났다.
서울은 다시 함락 위기에 처했고, 크리스마스까지 한반도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비관론이 워싱턴을 휩쓸었다.
🇺🇸 맥아더의 보고:
맥아더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긴급 전문을 보낸다.
“중국 본토의 병참선을 끊지 않으면 한반도는 잃는다.
전술핵 30발을 투하해 압록강 철교, 병참기지, 집결지, 심지어 중국 동북부의 공군기지를 초토화해야 한다.”
트루먼은 처음엔 주저했다.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악몽이 아직 생생했고, 핵무기 사용은 전 세계의 거센 반발을 부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엔군 피해 보고서가 하루가 다르게 쌓이고, 워싱턴 내 여론도 강경해지자 극히 제한적 범위에서의 전술핵 사용을 승인한다.
☢️ 압록강의 불바다:
1950년 12월 새벽, B-29 편대가 출격한다.
압록강 철교, 안둥 철도 허브, 병참선 요충지에 소형 핵폭탄이 투하된다.
버섯구름이 압록강 상공을 뒤덮고, 일대는 며칠간 접근조차 불가능한 불지옥이 된다.
🌏 국제사회 충격:
- 중국: 마오쩌둥은 전면전을 선언하려 하지만, 주은래와 소련 모두 “전쟁 확대는 안 된다”며 압박.
- 소련: 직접 개입은 피하면서도 만주 인근에 핵보복 가능성을 알리는 위협적 발언을 쏟아낸다.
- 유럽: 영국·프랑스는 미국의 결정을 공식 지지하지만,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유엔에서 강력 비난.
⚔️ 전황 반전:
핵 공격으로 중공군 보급선이 완전히 끊기면서, 이미 들어온 병력은 보급난에 시달리며 급속히 소모된다.
1951년 1월부터 유엔군은 반격을 개시, 38선을 넘어 다시 북진을 시작한다.
🇰🇷 한국의 상황:
국군은 핵 투하의 충격을 가까이서 지켜봤지만, 적어도 수도 서울은 다시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피란민들은 “미국이 진짜 마음먹었다”며 한숨 돌리고, 남한 내부의 패닉 분위기는 어느 정도 가라앉는다.
🔥 엔딩 포인트:
핵 사용은 전쟁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는다.
하지만 세계는 ‘세 번째 핵 사용국가’가 아닌, ‘핵을 다시 쓴 미국’이라는 사실에 경악한다.
냉전 구도는 더 빠르게 심화되고, 앞으로의 국제질서는 더욱 험악해질 조짐을 보인다.
💬 한 줄 코멘트:
트루먼은 여전히 맥아더를 불러다 호통치지만, 맥아더는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결과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역사는 이 순간부터 한층 더 위험한 세상으로 접어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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