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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if20

🧠 만약에 러시아 혁명이 실패했더라면? - 🟠 1편: 차르, 개혁을 선택하다 🧠 만약에 러시아 혁명이 실패했더라면? - 🟠 1편: 차르, 개혁을 선택하다1917년, 러시아는 전쟁·기아·분노로 들끓고 있었다.페트로그라드 거리에는 빵을 달라는 시위가 매일같이 벌어지고,군인들은 전선을 이탈해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역사에서라면 이 시점에서 2월 혁명이 터지고차르 니콜라이 2세는 퇴위했지만…👑 차르의 결단이 세계선에서 니콜라이는 놀라운 선택을 한다.측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마(의회) 권한 확대와전쟁 조기 휴전 협상을 전격 발표한 것.“국민이 원하는 것은 승리가 아니라 평화다”라는 선언은 러시아 사회에 충격파를 던졌다.🛑 혁명의 동력 상실전쟁이 멈추자 빵 배급이 정상화의회 권한 확대 → 야당·개혁파 참여볼셰비키가 외치는 “무장 봉기”는 힘을 잃고노동자·농민들도 더 이상 혁명에.. 2025. 9. 10.
🌊 태평양의 조선, 미국 품에 안기다 (2편) - 🇺🇸 조선, 미국식으로 바뀌다 🌊 태평양의 조선, 미국 품에 안기다 (2편) - 🇺🇸 조선, 미국식으로 바뀌다1906년, 서울 한복판에 미군사령부 깃발이 올랐다.총독부 대신 미 민정청이 조선을 관리하고,고종은 명목상의 군주로만 남았다.외교·재정·군사 권한은 전부 워싱턴 직할.이제 조선은 사실상 미국령 전초기지였다.🏛 미국식 개혁의 파도미국은 조선에 대대적인 근대화 프로그램을 밀어붙였다.교육: 영어 교과서 보급, 미국인 교사 파견,유학 장학금으로 신세대 엘리트 육성법률·행정: 조선 관리들이 미국법·헌법 배워서“조선판 변호사·판사” 세대가 등장기반 시설: 전신, 전차, 도로, 전화망…서울과 부산은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현대식 도시로 변모🛡 전초기지로 거듭나다부산·인천·진해에는 미 해군 기지가 들어서고조선 국경은 요새화됐다.철도와 .. 2025. 9. 8.
🌊 태평양의 조선, 미국 품에 안기다 (1편) - 🇺🇸 가쓰라-태프트 밀약 결렬, 조선은 미국 품으로 🌊 태평양의 조선, 미국 품에 안기다 (1편) - 🇺🇸 가쓰라-태프트 밀약 결렬, 조선은 미국 품으로1905년, 세상은 러일전쟁 직후였다.일본은 승리의 기세를 타고 조선을 손에 넣으려 했고,미국은 필리핀을 지키려 일본과 손을 잡으려 했다.그게 바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조선은 일본에, 필리핀은 미국에" —서로 딜을 본 거지.하지만 이 IF 세계선에서, 미국은 생각을 바꾼다.“일본을 너무 키워주면 태평양에서 경쟁자가 생긴다.”루스벨트 정부는 일본의 조선 지배를 막고,조선을 미국 보호국으로 편입시키기로 결정한다.미 해군은 곧장 움직였다.부산·인천·진해에 군항 건설을 추진하고,조선 정부에는 미국인 고문단이 파견된다.외교·재정·군사 고문이 들어와조선의 대외권을 사실상 접수한다.일본은 분노한다."우리가 .. 2025. 9. 8.
만약에 한국이 3만 정예군으로 임진왜란을 막아냈다면? 3편: “명나라 대신, 조선의 주도권” 만약에 한국이 3만 정예군으로 임진왜란을 막아냈다면? 3편: “명나라 대신, 조선의 주도권” 임진왜란의 전황은 초반의 혼란과 달리, 조선의 정예군 3만과 이순신의 수군 활약으로 완전히 달라졌다.문경새재에서의 육지 방어와 전라도 방면의 해상 차단은 일본군의 발을 묶어버렸고, 조선은 스스로 전선을 유지할 힘을 갖추게 되었다.📍 교착 상태에 빠진 일본군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애초에 "명나라 정복"이라는 거창한 꿈을 품었지만, 현실은 달랐다.조선군의 강력한 방어선 → 일본군의 보급로 차단수군의 압박 → 일본군은 경상도 일대에서 벗어나지 못함조선의 반격으로 점차 공세 동력이 약화결국 일본군은 전국시대의 용맹을 과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땅에서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는 상태에 갇혀버렸다.📍 명나라의 태도 변화명나.. 2025. 8. 18.
만약에 한국이 3만 정예군으로 임진왜란을 막아냈다면?2편: “문경새재, 조선의 승부처” 만약에 한국이 3만 정예군으로 임진왜란을 막아냈다면?2편: “문경새재, 조선의 승부처”임진왜란의 초반, 조선군은 준비 부족으로 속수무책에 밀렸다는 평가가 많아. 하지만 이번 IF 시나리오에서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전쟁 전부터 3만의 정예군을 꾸려낸 조선은, 전쟁 발발 직후 곧장 문경새재로 병력을 집중시켜 왜군의 북진을 차단한다.🏞️ 문경새재, 천혜의 요충지문경새재는 한양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길목이었다. 산세가 험하고 길이 좁아, 방어에만 성공하면 수적 열세라도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조선군은 새재에 목책과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산악 지형을 활용한 매복 전술을 펼친다.일본군은 조총 화력으로 돌파하려 하지만, 좁은 지형 때문에 병력 전개에 제약이 크다.결과적으로 일본군의 전진은 막히고, 속전속결 전략은.. 2025. 8. 18.
만약에 조선이 임진왜란 당시 3만 정예군을 갖추고 있었다면1편: 전쟁의 서막, 그러나 달라진 첫 판 만약에 조선이 임진왜란 당시 3만 정예군을 갖추고 있었다면 1편: 전쟁의 서막, 그러나 달라진 첫 판 1592년 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시대를 통일하며 일본의 잉여 전투력을 조선으로 향하게 했다. 실제 역사에서 조선은 준비가 허술했고, 신립 장군이 이끈 8천 경군은 탄금대에서 전멸하면서 길이 열려버렸다. 하지만 만약 이때, 조선이 3만 명의 정예군을 미리 양성해 두었다면 어땠을까?초반 판도, 완전히 달라지다실제 선조는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흘려듣고, 제대로 된 대비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IF의 조선은 이이의 제안 중 절반이라도 실현해 3만 명의 기동력 있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신립이 끌고 간 건 고작 8천이 아니라 3만의 정예군. 그들이 문경 새재에 진을 치고 있었더라면? 일본군의 북상은 초반부.. 2025.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