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약에 한국이 세계 최고의 IT 패권국이었다면?》
《1부.K-코드의 탄생: 산업화와 함께 열린 디지털 독립운동》
“K산업, 구로를 떠나 실리콘을 외치다”
대한민국, 1970년.
박정희는 없다. 하지만, 경제개발계획은 남아있다.
이 기묘한 세계선에서, 국가는 ‘수출만능주의’ 대신 기술 내재화를 우선했다.
한 해에 수천 개의 기계설계도면이 무역 대신 연구소로 보내졌고,
산업화의 엔진은 재벌이 아닌 기술자와 교수진이 돌리기 시작했다.
정부는 '중화학공업 육성' 대신 정밀기계·전자부품 중심의 중소기업 군집을
창원, 구미, 분당, 그리고 의정부에 만든다.
수출품은 싸구려 라디오 대신 ‘조립형 컴퓨터 부품’이었다.
“우리는 흉내내지 않는다. 우리만의 설계를 한다.”
– 당시 과학기술처 장관 대사, 1978년 산업기술 비전 선포식 중
🧠 교육부터 달랐다
전국 공과대학엔 ‘디지털 회로’, ‘초소형 CPU 설계’, ‘OS 커널 프로그래밍’ 같은 과목이
1980년대 초부터 등장했고, 초등학교에는 BASIC, LOGO 같은 코딩 수업이 들어왔다.
당시 학생들에겐 ‘전자계산기’가 아니라 ‘코딩하는 계산기’가 장난감이었다.
지방 국립대에서는 국산 컴파일러 제작 동아리가 전국 대회를 열었고,
서울대와 KAIST는 1983년에 벌써 **국산 16비트 운영체제 '한빛OS'**를 발표했다.
💻 산업화에서 디지털화로, 유려한 전환
1985년, 정부는 “제5차 기술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공식 선언한다:
“산업화는 이제 디지털로 전환된다. 우리의 공장은 이제 0과 1로 움직인다.”
구로디지털단지의 이름은 여기서 탄생했다.
이후 1990년까지 세계 최초의 ‘국가 단위 인터넷망’ K-NET이 상용화되고,
한국은 1994년, 일본보다 먼저 ‘국산 웹브라우저’를 수출하기 시작한다.
🌍 K-디지털의 탄생
1995년, 한국산 ‘코드OS’가 아시아 전역 PC방 시장을 휩쓴다.
삼성은 반도체 대신 자체 설계 CPU를,
LG는 ‘전자책 단말기’와 ‘전자칠판’을 개발해 유럽에 수출한다.
이제 사람들은 한국을 **“동양의 실리콘 타이거”**라 부른다.
그리고 이 모든 건,
‘박정희 없는 산업화’가 만들어낸 또 다른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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