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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극우3

🧩 지구병크 연대기 – 대한민국의 극우와 그 뿌리 - 🔸 3편: 민주화 이후의 변종 ― 종교와 미디어로 옮겨간 극우 🧩 지구병크 연대기 – 대한민국의 극우와 그 뿌리 - 🔸 3편: 민주화 이후의 변종 ― 종교와 미디어로 옮겨간 극우 1987년, 민주화의 봄이 왔다.그러나 독재의 언어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군사정권이 사라지자, 극우는 새로운 피난처를 찾았다.그곳은 바로 교회와 언론, 그리고 인터넷이었다.⛪ 반공의 신앙이 ‘종교의 교리’로 변하다1980~90년대, 급속히 성장한 대형 교회들은단지 신앙의 공간이 아니었다.많은 목회자들이 “공산주의는 사탄의 세력”이라 설교하며정치적 반공의 언어를 신앙의 언어로 포장했다.십자가 아래에 태극기를 꽂고,예배당에서 반정부 구호가 울려 퍼졌다.그들에게 신앙은 구원이 아니라,정치적 투쟁의 도구가 되었다.‘하나님의 나라’는 곧 ‘보수정권의 재집권’을 의미했고,‘좌파’는 ‘악마’가 .. 2025. 10. 14.
🧩 지구병크 연대기 – 대한민국의 극우와 그 뿌리 - 🔸 2편: 군사정권의 수호신 ― 반공의 신화 🧩 지구병크 연대기 – 대한민국의 극우와 그 뿌리 - 🔸 2편: 군사정권의 수호신 ― 반공의 신화 1950년대, 이승만이 심은 ‘반공’이라는 씨앗은1960년대 들어 군사 쿠데타의 명분으로 자라났다.“공산주의를 막기 위해서라면 민주주의쯤은 희생할 수 있다.”그 말 한마디가 바로 한국형 극우의 제2막이었다.⚔️ 총칼로 만든 ‘국가의 신앙’1961년 5·16 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 정권은자신들의 정통성을 ‘반공’으로 포장했다.그들에게 공산주의는 단순한 적이 아니라,국민을 통제하기 위한 영원한 공포의 도구였다.“빨갱이 잡자”는 구호 아래,모든 반대자는 곧 국가의 적이 되었다.정치적 경쟁자는 ‘용공’,지식인은 ‘사상오염자’,노동자는 ‘간첩 가능성자’였다.결국 반공은 종교가 되었고,박정희는 그 신앙의 교주였다... 2025. 10. 14.
🧩 지구병크 연대기 – 대한민국의 극우와 그 뿌리 - 🔸 1편: 이승만과 친일파 ― 극우의 탄생 🧩 지구병크 연대기 – 대한민국의 극우와 그 뿌리 - 🔸 1편: 이승만과 친일파 ― 극우의 탄생 1945년 해방.나라가 되찾은 그날, 조선의 거리엔 환희와 동시에 묘한 정적이 흘렀다.진짜 해방을 기다려온 독립운동가들은 감격했지만,누군가는 그날을 **“공포의 시작”**으로 느꼈다.그들은 바로 — 일제의 총칼 아래 권력을 누리던 친일 관료·경찰·지식인들이었다.⚙️ 반민특위의 서막, 그리고 배신의 연극해방 직후 구성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는그들의 죄를 묻고 새 나라의 정의를 세우기 위한 시도였다.“이제라도 죗값을 치르게 하자.”그러나 그 칼날은 세워지기도 전에 부러졌다.이유는 단 하나.당시 대통령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국가 분열 세력’**이라 규정하고경찰을 동원해 위원들을 체포했기 .. 2025.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