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구는 현재 진행형 646편 — 이집트, 3천400년 잠에서 깨어난 ‘멤논의 거상’
이집트 남부 룩소르에서 높이 14미터가 넘는 거대한 파라오 조각상이 다시 세상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20여 년에 걸친 복원 끝에 공개된 이 조각상은 고대 이집트 제18왕조 전성기를 이끌었던 아멘호테프 3세의 모습을 담은 이른바 '멤논의 거상’이다.
이 조각상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다.
한때 무너지고 흩어졌던 고대 권력의 상징이, 오늘날 국가 전략과 관광 산업의 한 축으로 다시 조립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 높이 14m, 돌로 만든 권력의 언어
공개된 조각상은 두 점이다.
각각 높이 14.5m, 13.6m에 달하는 거대한 석상으로, 기원전 1350년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멘호테프 3세는 두 손을 허벅지 위에 올린 채 앉아 있고, 얼굴은 나일강 동쪽을 향하고 있다.
머리에는 파라오의 상징인 네메스를 쓰고 있으며, 발 아래에는 그의 왕비 티예로 보이는 작은 조각상이 함께 조각돼 있다.
이 조각상은 단순한 초상이 아니라,
“신과 왕, 국가가 하나였다”는 고대 이집트 권력 구조를 돌로 표현한 정치적 조형물에 가깝다.
■ 지진에 무너지고, 역사의 조각이 되다
이 거상들은 원래 아멘호테프 3세의 장제전(왕의 사후 세계를 위한 신전) 입구를 지키던 조형물이었다.
하지만 기원전 1200년경 발생한 대지진으로 완전히 붕괴됐다.
이후 일부 파편은 다른 신전 건축에 재활용되었고,
나머지는 사막과 폐허 속에 흩어진 채 수천 년을 버텼다.
지금 우리가 보는 ‘멤논의 거상’은,
원형 그대로 보존된 유물이 아니라 조각난 역사를 다시 이어 붙인 결과물이다.
■ 20년 복원, 고고학이 아니라 국가 프로젝트
복원은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이집트와 독일의 합동 조사팀이 참여해, 파편 하나하나를 맞추는 작업이 이어졌다.
설화석고 채석지 추적, 파편 이동 경로 분석, 고대 공법 재현까지 포함된 이 작업은
단순한 학술 복원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문화 프로젝트에 가까웠다.
이집트 유물최고위원회는 이번 공개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아멘호테프 3세의 장제전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되살리는 과정이다.”
즉, 조각상을 복원한 게 아니라 고대 이집트의 ‘국가 이미지’를 복원한 셈이다.
■ 관광이 곧 외교, 유물이 곧 경제
이번 공개는 명백히 관광 전략의 일환이다.
이집트는 최근 20년간 정치 불안과 테러, 팬데믹으로 관광 산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고 있다.
지난달에는 10만 점 이상의 유물을 소장한 이집트 대박물관이 정식 개관했고,
당국은 올해 관광객 수를 1,800만 명으로 전망하고 있다.
멤논의 거상은 그 흐름 속에서 등장한 가장 상징적인 카드다.
고대 유물은 이제 박물관 안에만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집트 경제 회복을 견인하는 전면 광고판이 됐다.
■ 돌은 무너졌지만, 이야기는 살아남았다
3천400년 전 만들어진 돌은 한 번 무너졌다.
지진 앞에서는 파라오도, 제국도 예외가 없었다.
하지만 그 돌을 다시 세운 건 현대의 의지였다.
이집트는 과거를 소비하지 않고, 과거를 자산으로 재조립하고 있다.
문명은 사라져도, 이야기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국가는 남는다.
멤논의 거상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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