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병크 연대기 83편 – 3편 : 몰락의 후유증

📜 지구병크 연대기 83편 – 3편 : 몰락의 후유증
🏰 1709년 폴타바에서 카를 12세의 군대가 무너지자 스웨덴의 제국 신화도 함께 산산조각 났다. 이후 러시아는 발트해 연안으로 진격하며 스웨덴의 요새와 영토를 차례차례 빼앗았다. 에스토니아, 리보니아 같은 발트 지방은 러시아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한때 북유럽을 지배하던 패권은 눈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 영토 상실은 단순한 지도 변화가 아니었다. 스웨덴 사회 전체가 전쟁의 후유증에 휘청였다. “강대국의 꿈은 끝났다”라는 체념이 퍼졌고, 왕권과 귀족, 국민 모두가 다시는 러시아처럼 거대한 상대와 맞서 싸우지 않겠다는 암묵적 동의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스웨덴은 이후 수백 년 동안 중립 루트를 걷는다. 강대국들의 싸움에서 몸을 뺀 채, 전쟁보다는 생존을 택하는 길이었다.
🌊 하지만 이 중립 루트가 언제나 고상한 선택은 아니었다. 제국의 기억을 잃지 못한 스웨덴은 “중립”이라는 이름 뒤에서 종종 편리한 선택을 했다. 19세기 유럽 열강의 식민지 경쟁에서는 손을 뗀 대신, 내부 개혁과 산업화에 몰두했지만, 정작 20세기 들어서는 문제적 행보를 보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스웨덴은 “중립”을 내세우면서도 독일 나치에 철광석을 대량 수출하며 사실상 협력국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공식적으로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히틀러에게 무기급 자원을 제공한 것이다. “평화의 나라”라는 이미지 뒤에 숨겨진 이 아이러니는 지금도 학계와 정치권에서 꾸준히 비판받고 있다.
결국 스웨덴의 병크는 단순한 몰락에서 끝난 게 아니다. 강대국으로서의 오만 → 러시아 과소평가 → 폴타바 참패 → 패권 상실 → 중립으로의 퇴각 → 그러나 다시 이중적 행보라는 길을 걸으며, 한때 북유럽을 지배하던 제국이 어떻게 평범한 국가로 내려앉았는지를 보여줬다.
오늘날 스웨덴은 “중립, 복지, 평화”의 이미지로 기억되지만, 그 뒤에는 몰락의 후유증과 기회주의적 중립의 역사가 깊이 새겨져 있다.